요즘 진용진 없는영화 시리즈 곧잘 보고 있는데
없는영화는 한번쯤 보거나 겪어봤지만 크게 회자되지 않고 지나가는 얘기들을 잘 끄집어내는것 같다.
오늘 본 없는영화는 우정의 조건(나를 나쁜년으로 만드는 착한 친구ㄷㄷ)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주인공 '민지'는 같은 반에 행동이 굼뜨고 좀 겉도는 '은아'라는 친구를 챙겨주게 된다.
민지는 은아랑 같이 다니면서 은아의 굼뜨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에 답답해 하기도 하지만
은아가 나쁜 친구는 아니기도 하고 약간은 편하게 막대할 수도 있는 친구라서 그럭저럭 같이 다니게 된다.
하지만 은아는 결국 민지에게 돌이킬수 없는 개트롤짓을 하게되는데...!
그런데...나도 중2때 사귀었던 친구 한명이 생각나고 말았다...
그래서 글을 한번 파봤다.
내가 중2때 만난 그친구도 가명으로 '은아'라고 하겠다. (다른 친구들도 다 가명)
은아는 반에서 말 한마디도 안하는 친구... 요즘말로는 함구증이 있는 친구였다.
3월 초에 서로 잘 모를때 선생님이 은아에게 발표를 시킨적이 있는데
은아는 수그린채로 겁 먹은 얼굴을 하고는 선생님만 쳐다보고,
혜지라는 다른친구가 대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 은아는 원래 말을 거의 안해서 작년에도 발표를 못했어요. 다른친구를 시키는게 좋을것 같아요."
올빽머리에 뚝심 있는 느낌의 그 친구가 또박또박 설명해 주니 선생님께서도
"어머, 그렇구나. 그러면 어떤 친구가 발표해볼까..."
하는 식으로 넘어갔던 것 같다.
4월에 자리를 바꿨는데 내가 은아랑 짝이 됐다.
원래 말을 안하는 친구라고 하니 굳이 말을 걸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은아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저기... 일본어 숙제 어디까지 하는거야?"
혜지가 은아 말 안한다고 했었는데... 말을 할줄은 아는구나?
솔직히 목소리를 처음 들어봐서 신기하긴 했지만 그냥 평범하게 일본어 숙제 알려주고 그날 대화는 끝났던 것 같다.
그래도 한번 말을 트고 나니 은아가 나에게는 마음을 연것 같았다.
말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필담을 많이 주고받았었다. 글씨가 참 귀여운 친구였다.
은아는 여전히 반에서 말을 하지 않는 이미지였지만,
"그래도 나은이한테는 말하긴 할걸?"
하는 정도의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은아가 나에게는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고,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한(?) 내가 괜히 좋은 사람이 된것 같은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한편 은아보다 조금 앞서 친해진 성희라는 친구도 있었다.
3월에 약간 춥고 긴장된 상태로 서로 친해질 친구를 탐색할 때쯤
어느 체육시간에 우연히 앞뒤로 서서 얘기를 길게 나누다가 성희가
"어? 우리 말 잘 통하는것 같은데?"라고 말하면서 깔깔 웃었던 기억은 지금도 난다.
성희는 푸근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성희가 나랑 은아 자리에 자주 놀러와서 수다떨고 가다 보니,
어느새 나랑 성희랑 은아가 셋이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가끔 옆반에 있는 내 친구 희진이도 우리반에 놀러와서 넷이 어울리기도 했는데,
은아는 성희나 희진이에게도 작은 목소리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고, 문자도 서로 주고받았었다.
한편, 은아가 말을 잘 못하고 소심한 게 은아 잘못은 아니지만,
은아의 그런 특성 때문에 가끔 나의 일방적인 배려가 필요할 때도 있었다.
선생님께 뭘 말씀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은아 대신 말해주거나 하는 것은 딱히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명백하게 손해를 보는 일도 있었는데,
일본어 수행평가에서 짝이랑 같이 손들고 일어나서 일본어 회화를 몇마디 하면 5점을 주는 게 있었다.
일본어 5점 정도야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별것 아니기도 한데,
내신에서 한문제 틀릴때마다 부모님 눈치보고 속상해했던 당시의 나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점수였다.
"은아야... 이게 5점이면 작은게 아닌데... 한번만 일어나서 같이 해주면 안될까?"
"......"
따로 교무실에 일본어 선생님께도 찾아가 봤다.
"선생님, 제 짝꿍 은아가 이러이러한 친군데요... 저 혼자서라도 회화 하면 수행 점수 인정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 친구한테 잘 얘기해서 같이 하도록 해~"
엄마에게도 말씀드려 봤었다.
"엄마, 내 짝꿍 은아 알지? 일본어 수행평가 이러이런게 있는데 은아는 발표를 못해서 5점은 포기해야 될것 같아."
"에이~ 그냥 수업시간에 은아 손 잡고 번쩍 들어버려!"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었지만
반 애들 앞에서 발표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은아에게 부담이 될거라는 점은 자명했고,
결국 나는 그 수행평가가 끝나가도록 손들고 발표를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5점을 손해 봤지만 나름대로 은아의 특성을 존중해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은아의 특성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은아는 내 핸드폰에 깔려있는 테트리스 게임을 몇번 해보더니
나중엔 쉬는시간마다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테트리스를 하는게 너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쉬는시간이 끝나고 은아에게서 뜨거워진 핸드폰을 받으면, 다른 친구한테 문자가 와있기도 했다.
"은아야... 게임하는 건 좋은데 문자 오면 나한테 보여주긴 해야지"
"......"
은아는 또 다음 쉬는시간에 자연스럽게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게임을 하고, 문자는 또 씹혀있고 그랬다.
은아가 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으니 성희도 없고 희진이도 안 놀러오는 시간에는
은아도 내 말을 씹고 나는 다른 친구랑 문자도 못하곤 해서
혼자서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시기쯤 이동수업 때 옆자리에 앉은 선유라는 친구가 필담으로 말을 걸어왔었다.
선유와는 말을 별로 해보진 않았지만, 선하고 단아한 느낌의 친구였었다.
'나은아! 은아랑 잘 지내고 있지?'
'엉. 왜?'
'은아 상처도 많고 여린 친구거든... 나은이 너가 은아한테 잘해줘야 돼...'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러던 어느날 밤, 은아에게 문자가 왔다.
'나은아 너 그냥 성희랑 쌩까면 안돼?'
글이 길어져서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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