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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이 생각

위로받고 싶을 땐 차라리 울어버리자 -1-

by 나은이😊 2022. 7. 31.

예전 회사에서 거래처 미팅을 갔다가 오해를 받고 거래처 직원의 분노를 혼자서 받아낸 적이 있었다.

 

거래처 a부서 A1, A2님과의 미팅이 있었는데,

거래처에서 a부서와 우리 회사의 중간역할을 하는 b부서의 B님의 실수로 업무전달이 잘못 된 것을

미팅 직전에 알게 된 상황.

 

A1: (언성을 높이며) 아니, 우리가 일을 맡긴지 한달이나 됐는데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요?

나: (허둥지둥) 저도 조금 전에 상황을 알게 됐는데요, b부서의 B님께서 업무 지시를 이러이러하게 주셔서요... 

A2: (A1님에게) 진정하세요... 인수인계가 잘못 돼서 그런것 같은데.

A1: 지금 그쪽 회사 인수인계 때문에 일이 한달이나 밀렸다는게 말이 되냐고요!!

 

아니 당신네 회사에서 업무지시가 잘못된건데...

그때는 머리가 하얘져서는, 저 사람이 내 말을 끝까지 듣고 믿어줄것 같지도 않고

일단 분노라도 누그러뜨리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봤지만,

잠깐의 미팅 후에 A1님은 거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A2님은 머쓱하게 웃어보이며 뒤따라 나가셨다.

......

 

혼자 남겨져서는 억울해서 울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하, 저사람들이랑 이번 일은 계속 해야될 것 같은데, 어떡하냐...'

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들면서 일단 울음을 참고 집으로 갔다.                                     


이때는 가족이랑 살고 있었는데,

나는 원래 힘듦에 무딘 편이기도 하고 가족에게 굳이 힘든 얘기를 하지는 않는 사람인데

울기 직전인 표정을 숨길 수가 없을것 같아서 같이 저녁 먹는 엄마한테는 얘기를 나눠봤다.

울음을 꾹 참고는

"엄마, 나 OO사에 출장갔다가 오해를 받았는데..."

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는데,

 

위에서는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생략하고 비교적 간단히 적었지만

내 직업과 배경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있는 엄마한테는

"b부서에서 XX업무에 대한 지시를 이러이러하게 줬었는데, a부서에서는 XX업무는 이미 진행된줄 알고 YY업무를 하는줄 알고 온거였어..."

이런식으로 주절주절 복잡하게 얘기해서 그런지 엄마의 반응은,

"(니 잘못은 아니더라도) 너네 회사가 잘못한거 아냐?"

여전히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나는,

"아니, OO사에서 잘못해놓고서 나한테 화를 냈다고..."

그러자 엄마는,

"OO사에서 한소리 듣고 와서는 집에서 뭐라하네..."

 

엄마한테 얘기를 해봐도 여전히 억울함이 풀리지 않은 나는

남자친구하고도 통화를 해서는 비슷한 화법으로 상황을 털어놓았는데 남자친구의 반응은

"아니, 그러니까 너 잘못은 아니라는 거잖아. 그런거면 괜찮아..."

그래서 나는 드디어 끅끅 울어댈 수 있었는데...


그래도 업계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내 말을 들어줬으면 더 시원하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나는

팀장님께 뭔가 보고를 할게 있는척 팀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팀장님은 나보다 20살은 많은 남자분이라 막 친한건 아닌데, 직속 상사로 내 업무를 1년 넘게 봐주신 분이었다.

 

"저, OO사에서 오해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상황 설명을 듣고 나서 팀장님께서는,

"그러니까, 나은씨가 독박 쓴거구나? 허허, 너무 상처 받지 마.

그치만 우리 회사에서 그런 특수한 상황까지 고려해서 업무 전달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어.

그런데 원래 이게 누가 담당해야 되는 건이었다고? 아, C님? C님께로 다시 업무 분배 해야겠다. 내가 말해 놓을게"

이런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와... 당시에는 팀장님이 우리 엄마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게,

- 상황에 대한 이해 + 감정 헤아리기

-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기

- 해결해줄 수 있는 일(A1님과 일 어떻게 계속 하지)에 대해서는 해결해 주기

 

이거 쓰면서도 눈물 날것 같다... 이젠 예전 회사지만 팀장님 그립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불쑥불쑥 생각나면 잠 못이루고 속상해하는 일이긴 하지만 (특히 거래처에 마음에도 없는 사과했던 것!!)

어쨌든 팀장님의 대처 후에 적어도 A1님과 다시 일해야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엄마가 너무 야박했다, 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나중에 스피치 코칭을 받으면서

내가 상황에 맞는 화법을 사용하면 엄마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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